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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우유, 농가 확보전 뒷 이야기

해답은 있다 2011. 3. 7. 12:47



ⓒ 김재민 전문기자


서울우유가 농가확보에 나섰다는 기사를 접했다.

얼마나 오래만에 들어본 이야기인가?

유업체의 농가확보 경쟁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사라졌다.

유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 유가공업체의 수가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1년 이후에는 공급과잉으로 10여년째 감산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던 중 2010년 1월 그리고 2010년 11월 연이어 발병하며 원유수급 불안을 초래했다.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이른바 빅3에 롯데유업, 동원데어리, 빙그래, 부산경남우유 등의 유업체가 있지만 직격탄은 서울우유가 맞았다.

지난해 1월 구제역은 서울우유협동조합 조합원이 밀집해 있는 경기지역에서 발병했고 11월 경북지역 구제역이 발병해 서울우유 농가가 밀집해 있는 경기북부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며 정상 수급량인 1800t보다 하루 평균 250t이나 물량이 줄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울우유의 원유부족 신호는 지난해 9월 벌써 시작됐다. 상반기 살처분으로 물량이 많이 줄어든 상황속에 여름 폭염으로 소들이 체력이 고갈되면서 산유량이 떨어지면서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두번째 구제역으로 살처분 양이 더욱 늘어나면서 결국 비상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낙농진흥회에 물량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며 결국 농가확보에 뛰어 들었다.


낙농진흥회와 서울우유의 좋지 못한 관계


낙진회는 왜 서울우유의 협조요청을 거절했을까? 

표면적 이유는 물량부족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서울우유협동조합과 낙농진흥회와 좋지 못한 일화가 있다.

서울우유는 1999년 낙농산업 선진화를 위해 출범한 낙농진흥회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서울우유가 전체 낙농산업의 36%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서울우유가 참여하지 않는 낙농진흥회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고 정부도 서울우유의 참여를 적극 권고했다.

여러 부대조건을 붙여가며 서울우유는 참여를 했다.

하지만 참여 2년 후 원유수급불안사태가 발생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낙농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정부는 낙농진흥회 참여 농가를 중심으로 감산정책을 적극 펴려 했으나 서울우유가 탈퇴를 선언했다.

조합원들의 감산반대 그리고 대의원회를 통해 탈퇴를 공식의결했다.

이로 인해 기존에 남아 있던 농가들이 큰 혼란에 빠지며 부산우유가 탈퇴를 선언했고 결국 낙농진흥회 해체 요구로 이어졌다.

신설법인이었던 낙농진흥회 직원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농식품부, 축협중앙회, 매일유업, 부산우유 등 이른바 좋은 직장을 퇴사하고 낙농진흥회로 이직했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농림부도 서울우유가 전체 산업은 생각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며 탈퇴했다고 분노했다.

이로 인해 서울우유는 그후 10여년간 농식품부는 물론 낙농진흥회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업계 1위 서울우유가 농가들의 감산부담까지 떠 안은채 낙진회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인생살이 새옹지마라 했던가 부족한 것 없던 서울우유도 결국 낙농진흥회에 고개 숙일때가 오고 말았고 낙농진흥회는 현재 공급하고 있는 물량도 부족하다며 보기 좋게 거절하며 예전을 아품을 되 갚아줬다.¶